2015년 11월 동역서신

2015년 11월 동역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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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형편에 처해서도 기뻐하고 즐거워합니다. (빌 4:12)

사도 바울의 고백입니다. 그것도 감옥에서 이런 고백을 합니다. 참으로 도전이 되는 말씀입니다. 마을에서 지내는 동안 바람이 많이 불었습니다. 비가 몇 달 동안 오지 않아 건조할 대로 건조한데 무섭게 부는 바람은 땅에 있는 모든 검은 모래를 집에 쏟아 붓고 가는 듯 했습니다. 바나나 잎 사이로, 망고나무 잎 사이로 부는 바람이 그렇게 위협적인 소리를 내는지 처음 알았습니다. 닦아도 닦아도 또 시커멓고, 돌풍처럼 부는 바람 속에서 눈을 뜰 수 없을 때 기쁘지도 않았고 즐겁지도 않았습니다. 상상도 못한 바람 소리를 들을 땐 이대로 집이 날아가 버리나 싶어 무섭기까지 했습니다.

마을에 갈 때도, 마을에서 올 때도 바람이 많이 불었습니다. 파도가 거셌고 요동치는 배 안에서 멀미로 고생했습니다. 그래도 마을에 갈 때는 바람이 뒤에서 불어서 보통 때처럼 14시간 정도 걸려 도착했습니다. 하지만 알로타우로 올 때는 앞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다 맞으며 힘겹게 힘겹게 항해했습니다. 때론 바람을 피해 해안가로 지나가면서 사람들을 태우기도 했고, 배를 타기로 예정되어 있던 현지 번역자들을 찾고 기다리느라 한참 동안 거친 바다에서 머물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25시간 30분만에 육지에 발을 디디게 되었습니다. 안전하게 도착한 것에 대한 감사는 있었지만 기쁘지도 즐겁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말씀에 의지하며 기도했습니다. 육체의 괴로움은 기쁨도 즐거움도 허락하지 않았지만, 마을에 있는 동안 번역팀과 함께 들었던 닉 부이치치의 설교 본문이었던 빌립보서 4:11-13 말씀은 상황이 아닌 주님을 바라보게 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위로하심을 경험했습니다. 마을 집에 머무는 동안 세찬 바람 속에서 어찌할 바를 모를 때 조용히 찾아와 자신이 갖고 있던 두꺼운 천으로 숭숭 뚫려 있는 창문들을 가려 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분은 천이 부족해 3개의 창문 중 2개의 창문 밖에 막지 못함을 오히려 미안해 했습니다. 그 분의 모습 속에서 주님을 볼 수 있었습니다. 또한 평소보다 길어지는 항해에 몸도 마음도 지쳐서 ‘주님 더 이상은 힘들 것 같습니다’ 고백할 즈음 그렇게도 거칠었던 파도가 4시간 동안 잠잠했습니다. 보통 때 이 구간의 파도가 험한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주님의 손길임을 즉각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희처럼 이 말씀을 붙잡은 사람이 있습니다. 번역팀의 일원인 헤드릭입니다. 그는 몸이 왜소하고 손과 발에 장애가 있습니다. 학교 공부도 많이 못했습니다. 동생인 속테스의 권유로 번역 사역에 참여는 하지만 그리 적극적이지 않습니다. 올 때도 있고 안 올 때도 있고. 사람들도 그러려니 합니다. 그런 그가 두 팔과 두 다리가 없는 닉 부이치치가 전 세계를 다니며 복음을 전하는 모습을 보고 도전을 받았습니다. 닉 부이치치가 간증하는 내내 눈을 못 떼고 집중하더니 본문 말씀이 언급되자마자 얼른 노트에 적습니다. 함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은 있었지만 말씀을 적은 사람은 헤드릭 뿐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자신들과 다른 닉 부이치치의 모습에 신기해했지만 헤드릭은 자신도 장애를 갖고 있기에 더 말씀에 집중하는 듯 보였습니다. 앞으로 이 말씀이 헤드릭의 삶에 어떤 변화를 줄 지 참으로 기대가 됩니다. 사도 바울과 닉 부이치치의 감사의 고백이 동일하게 헤드릭의 고백이 될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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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을 읽는 기쁨, 듣는 기쁨, 아는 기쁨

마을에 있는 동안 마가복음을 녹음했습니다. 전체 16장을 녹음하는데 13명(남11명, 여 2명)이 참여했습니다. 유창하게 잘 읽는 사람도 있었지만 번역팀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은 카니누와어로 번역된 마가복음을 처음 읽는 것이고, 또한 카니누와어로 쓰여진 책도 처음 읽는 것이었기에 쉽지 않았습니다. 앉아서도 읽고 엎드려서도 읽고. 읽는 자세는 다양했지만 모두 참으로 열심히 읽고 또 읽었습니다. 녹음할 때 틀리지 않으려고 읽었겠지만 그들이 읽고 있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입술이 아닌 마음에 새겨지기를 녹음하는 내내 기도하고 또 기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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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마이크에 대고 녹음이라는 것을 하려니 어색하기도 하고 뜻대로 되지도 않았는데 감사하게도 모두 웃으며 즐겁게 녹음에 임했습니다.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했을 법도 한데 계획한 시간보다 더 하자며 열심을 내더니 이틀 만에 녹음을 끝냈습니다. 마지막 장인 16장을 실버스터가 녹음했는데 마침 딸 쉐마가 뒤에서 조용히 듣고 있었습니다. (맨 오른쪽 사진) 아직 글을 못 읽는 쉐마도 녹음된 말씀을 통해 카니누와어로 번역된 말씀을 들을 수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지요. 이후 박 선교사의 수정 작업을 거쳐 녹음한 말씀 일부를 주일 예배 후 함께 들었습니다. 어린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모두 조용히 경청하는 모습이 참으로 인상적이었습니다. 아직 수정 작업이 남아 있는데 잘 마무리 돼서 다음 마을 방문 때 계속해서 마가복음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기도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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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성경공부도 했습니다. 번역팀을 대상으로 16과로 구성된 마가복음 성경 공부 교재를 가지고 함께 공부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물론 질문이 영어로 된 교재입니다. 이 교재로 공부하면서 질문이 마을 사람들에게 어려운지 타당한지 검토하면서 질문을 카니누와어로 번역했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카니누와어로 쓰여진 최초의 성경 공부 교재가 만들어졌습니다. 내년 11월에 미니 성경 봉헌식이 있기에 그 동안 이 성경 공부 교재를 이용해 카니누와어로 번역된 말씀이 얼마나 좋은지 조금이라도 맛을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이 교재가 잘 쓰여지도록 기도 부탁 드립니다.

풍성한 감사와 함께 기도제목 나눕니다.

  • 마을에 있는 동안 한국에서는 추석이, 캐나다에서는 추수 감사절이 있었네요. 시베시베 마을에서도 감사와 축하의 자리가 있었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카니누와 번역팀을 신실하게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바이탈 모듈에 참석하며 열심으로 번역한 번역자들에게, 그리고 기도로 밭의 작물로 지원해 준 마을 사람들에게 감사하며 서로 축하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신약이 다 번역되려면 앞으로도 시간이 더 걸리기에 계속해서 기도하며 서로 격려해 주기를 부탁하는 말도 있었습니다.
  • 그 동안 스티븐과 마리사 선교사님께서 수고해 주셔서 카니누와를 포함해 11개 종족 미니 성경 조판 작업이 잘 끝났고 인쇄소에 맡겨진 상태입니다. 한 언어당 한 달씩 총 11개월에 걸쳐 인쇄될 예정입니다. 미니 성경 출판을 위해 헌금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든 과정에서 어려움이 없도록, 필요한 재정이 채워지도록 기도해 주세요.
  • 카니누와 어린이들과 글을 모르는 청년들을 위해 2016년 달력을 만들었습니다. 카니누와어 알파벳과 단어들이 적힌 달력입니다. 청년들을 위한 문해 사역이 잠시 중단된 상황인데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그리고 작은 달력이지만 카니누와 사람들이 글을 아는데 도움이 되도록 기도 부탁 드립니다.
  • 번역팀이 신명기, 여호수아, 사사기 일부 말씀들을 마을 점검하고 있습니다. 바이탈 모듈 동안 초벌 번역한 구약 파노라마 말씀들을 계속해서 점검할 계획인데 마을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세요.
  • 저희는 11월에 있는 문해사역관련 웍샵 (Vernacular Path to English)에 참석차 이번 주 우까룸빠로 올라 갑니다. 1500m 산지에 위치해 있어 그리 덥지는 않지만 현재 극심한 가뭄으로 인해 물 공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저희 마을을 포함해 파푸아뉴기니 전 지역이 몇 달째 계속되는 가뭄으로 밭에 작물을 심지 못하고 있습니다. 단비를 주시길 간절히 기도하고 있는데 함께 동참해 주세요.

마을을 떠나기 전 박 선교사가 빌립보서 1:3-6 말씀으로 주일 설교를 했습니다. 카니누와 종족을 위해 번역을 시작하신 분도 하나님, 이루실 분도 하나님이시니 온전히 하나님만 바라며 그 분의 부르심에 감사와 기쁨으로 순종하자는 메시지였습니다. 동일한 말씀으로 격려하길 원하며 동역자님을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고백으로 이번 편지를 마무리 합니다. 보고 싶습니다.

중보 기도의 기쁨 가운데,
2015년 10월 26일
박요섭 조선향 선교사 올림